스포일러 없습니다.(라고 쓰면서 이 시리즈에 스포일러가 과연 소중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주 추천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퍼스트 킬’. 지난 6월 10일 넷플릭스에 론칭돼 제작 전부터 ‘뱀파이어 퀴어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빅토리아 슈워브라는 미국 영어 성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이 시리즈에도 작가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수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의외로(?) 15살이라 시리즈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조금 놀랐지만 원작이 뱀파이어 하이틴 로맨스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세라 캐서린 훅, 임마니 루이스, 엘리자베스 미첼 주연.
‘퍼스트킬’은 사실상 저 포스터 사진 한 장에 모든 것이 나와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퍼스트 킬〉은 뱀파이어 줄리엣과 사냥꾼 칼리오페의 이야기로,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의 도약을 위해 첫 번째 타깃을 물색하며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줄리엣은 명망이 높은 뱀파이어 가문의 딸이고, 칼리오페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괴물 사냥꾼 길드의 조합원이자 그들의 딸. 두 사람은 학교에서 첫 만남을 이어가며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어떻게 보면 완벽한 ‘적인’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첫 에피소드를 시작한 뒤 두 사람 사이의 묘한 분위기를 보며 은은한 로맨스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 묘한 기류 속에서 처음부터 단숨에 서로가 적임을 파악하고 마침내 ‘첫 번째 무엇’을 이어가게 된다. <퍼스트 킬>의 에피소드들은 ‘첫 키스’, ‘첫 대결’, ‘첫 데이트’ 등 줄리엣과 칼리오페의 반경에 일어나는 ‘첫 번째’ 충격의 집합이지만, 이 드라마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피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려 들지 않도록 곧고 강하며, 이른바 첫 에피소드부터 직구를 던지며 시작된다.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냥꾼들이 서로 사랑하고 그들의 가족이 사이좋게 지내며 시리즈가 후반부에 이어 막다른 노선을 타게 될 것이라는 모든 암시를 이미 첫 게임부터 시원하게 보여주며 시작된다.
〈퍼스트 킬〉은 퀴어 뱀파이어물로, 두 주인공이 레즈비언으로 등장해 적이자 애정의 대상인 서로에게 애증을 품고 진행되는 이야기다. 이들의 애정 공세가 ‘일단 한 번 죽이고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보통의 뱀파이어물은 어떤 장르에서도 마을이 괴물의 존재를 무시하고 배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하거나 뱀파이어의 생존, 사냥 자체를 모토로 하는 영화나 시리즈가 많은데 <퍼스트킬>은 아예 “자, 이제 막창 드라마가 시작됩니다”라고 종을 치며 본론으로 들어간다. 뱀파이어가 소재이긴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레즈비언 로맨스가 중심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고어적인 느낌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듯 낯설게 다가가기도 한다. CG 퀄리티를 제치고 로맨스 장면에 모두 투입했다는 유머가 나오는데 <퍼스트 킬>을 보고 있으면 “진짜 그러네”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흑인가 VS 백인가 설정을 당당하게 넣은 것도 그렇고, 몇몇 장면은 정말 당당하게 B급 장르여서 최근에 본 시리즈 중에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 마을에 괴물이 돌아왔대요.” “오 그렇군요.” 이런 대화가 무심코 가능한 시리즈라니 너무 즐거웠다.
지난 1회부터 8회까지의 모든 에피소드가 대부분 클리셰 뱅백의 여러 장르를 표방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퀴어 레즈비언 요소가 한없이 투입되기 때문에 다소 신선한 느낌이 들어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퍼스트 킬>의 주제는 ‘뱀파이어 vs 인간’이 아니라 원앤언니 ‘동성애’임을 보여주는 연출 흐름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 잘 나오지 않는 군중 장면이나 괴물과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올레벌레를 넘어 본격적인 애정 장면이 나오면 템포도 느리고 연출력이 수백 배가 되는 엄청난 빌어먹을 영화적 마인드에 박수를 보냈다. 두 주인공이 하이틴이고 티격태격하며 애증을 쌓아가는 과정도 청소년의 그것이어서 싱그럽게 즐길 수 있었다.
현재 시즌2를 독려하는 팬덤이 널리 형성돼 있는데 제작진은 스트리밍 성적을 보고 시즌2 제작 여부를 확정하겠다고.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서비스하는 것 자체가 넷플릭스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소 없이 시즌2로 이어져 <퍼스트킬> 시즌2를 빠른 시일 내에 즐겁게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