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K문고를 방문할 때마다 플래티나 회원임을 자각하고 손에 책 한 권은 꼭 챙겨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물론 책을 좋아해서 K문고를 방문하지만 뭔가 의무감에 사로잡혀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산 그날도 K문고를 1시간이나 돌아다녔지만 딱히 살 수 있는 책이 없어 고민하던 때였다. “그냥 나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좀 그렇지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이 검은 바탕에 따로 추정되는 게 꽂혀 있는 책이었다. 결정적으로 제목이 마음에 든다. “천문학자가 별을 안 봐?” “천문학자는 별을 보는 사람 아닌가?” 천문학을 뜻하는 영어의 astronomy는 별을 뜻하는 astro, aster에서 비롯된 단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별표(*)도 영어로는 asterisk라고 한다. 그런 천문학을 영위하는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다니 말도 안 된다.
처음에는 천문학자가 천문학을 실생활에 접목해 나처럼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천문학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심각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작가의 직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어차피 전문적으로 파헤쳐가도 저 같은 문구입니다 출신은 몰랐을 것이고 심하면 중간에 책 덮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것이다.
작가는 철저한 1인칭 시점에서 본인이 천문학자로 살아온 길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는 책답게 이야기는 시종일관 가벼운 문체로 부담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때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나 아쉬운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마치 사회학자나 기자가 아니냐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작가가 어떤 사회적 고발을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라는 점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상열차 분야 지도’가 새겨진 티셔츠와 ‘나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중 어느 것이 더 잘 팔리느냐는 질문에는 저도 모르게 말이 막혔다. 1만원권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3개나 포함돼 있어 1030여년 전 헬기 혜성의 흔적을 기록한 천문학에 나름대로 조예가 깊었던 나라가 작금의 현실에서는 우주과학을 향한 달리기로 중위권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우리는 과거에도 우리만의 지식과 학문으로 나름대로 천문학 역사를 써왔지만 결국 요즘 학문은 작가들조차 서양식 천문학을 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작가에게 호감을 가진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어릴 때부터 열렬히 천문학자가 되고자 했던 꿈 많은 소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날들이 모여 지금의 작가를 만든 것이다. 작가는 각종 인터뷰에서 겸손함을 보이며 답변을 하기도 했는데, ‘네이처’가 오직 작가를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다섯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을까. 그것도 비교적 우주과학, 특히 달 탐사에 있어서는 매우 후발주자인 대한민국이다. 둘째, 작가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책을 사면서 왠지 모를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수준에도 맞지 않는 책을 구입했다고 생각한 책이 두 권 있었는데,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였다. 이기적 유전자는 간신히 완독했지만(그래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검은 책 표지와 아랫얼굴 띠이고, 그리고 meme라는 단어뿐이다), 코스모스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지루했다. 어떤 과학자는 이 난공불락의 요즘 같은 책을 중학생 때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는데 역시 그는 과학자가 됐고 나는 문과를 전공한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포기한 <코스모스>를 작가도 완독하지 못했다니 왠지 모르게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동질감을 느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작가의 다음 책이 벌써 기다려진다. 아직 젊어서 책을 쓸 날은 많을 것이고, 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감성과 성향을 잃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아니 그 이상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다시 한 번 작가의 담담한 문체를 감상하기를 희망하고,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천문학을 말해주길 바라며 오늘 밤은 괜히 밤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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