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마를 사랑했다(Extremely WickedShockingly Eviland Vile)는 엘리자베스 켄달(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가명으로 실제 이름은 엘리자베스 크로퍼로 알려져 있다.)이 쓴 연쇄살인마 테드 밴디에 대한 그녀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왼쪽) 실제 엘리자베스 크로퍼와 테드 밴디 / 오른쪽) 영화 속 엘리자베스 켄달과 테드 밴디
크로퍼는 이 영화에서는 리즈 켄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크로퍼의 회고록이 ‘리즈 켄달’의 필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주인공 역인 엘리자베스 크로퍼(영화에서는 필명의 리즈 켄달로 등장한다) 역은 릴리 콜린스가 맡았고 테드 밴디 역은 잭 에프론이 맡았다. 그 밖에 카야 스코델라리오, 딜런 베이커, 할리 조엘 오스먼트, 그리고 존 마르코비치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극을 뒷받침한다.
감독은 존 발링어가 맡았는데 밴드 ‘메탈리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인연으로 메탈리카의 보컬 제임스 해트필드가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테드 밴디를 다루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존 배링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2019년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살인을 말하다: 테드 밴디 테이프’의 제작자 겸 감독으로 참여했다.
본 작품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엘리자베스 크로퍼의 회고록 ‘The Phantom Prince: My Life with Ted Bundy’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74년 미혼모였던 크로퍼가 잘생기고 매너 넘치는 ‘인싸’ 테드 밴디를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해 1989년 밴디의 혐의가 인정돼 최종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를 다루고 있다.
작중인 밴디(잭 에프론)를 상징하는 환동사.
실제 환동사는 사람을 물어뜯지 않는다. 또한 상대적으로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상어 지느러미 등의 요리 재료로 사용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년 희생되고 있다.
해롭지만 무해한 위장 아래 테드 밴디는 타인의 삶을 파괴해왔다.
즉, 이 작품은 테드 밴디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테드 밴디라는 한 마리의 환동사에 물린 엘리자베스 크로퍼의 삶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야 스코딜리오가 연기한 캐롤 앤 분 실제로 캐롤은 테드 밴디와 결혼할 정도로 그에게 맹목적인 여성이었다.
이런 캐롤의 모습은 크로퍼와 대비된다.
테드 밴디를 사랑한 여자로서, 그리고 테드 밴디를 경찰에 신고한 밀고자로서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자기 자신이 파멸시켰을지 모른다는 고민에서 나온 내적 갈등이 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잭 에프론이 연기한 테드 밴디에게 잡아먹힌 느낌이 강하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코왈트 판사 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와 자크 에프론.
테드 밴디의 최종 공판 장면은 필요 이상으로 공을 들인 느낌이 강하다.여유롭고 날카로운 마르코비치와 초조하면서도 꾸밈없는 에프론의 연기가 충돌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오히려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서사를 흐리게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크로퍼의 심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테드 밴디는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로 연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잭 에프론의 훌륭한 연기와 극 중 높은 비중으로 인해 릴리 콜린스가 연기한 엘리자베스 크로퍼의 비중과 묘사가 빛을 발한다.
영화 중반부부터 밴디의 재판, 그리고 크로퍼와 대비되는 캐롤 앤 분(카야스코 델라리오)의 묘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엘리자베스 크로퍼의 회고로서의 영화의 핵심 서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 감독 본인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나 각종 도서, 기사를 통해 그 결말이 충분히 알려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밴디 역할을 소화한 잭 에프론의 연기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PS: 영어 원제 [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and Vile]는 정말 잘못 붙인 제목인 것 같아. 차라리 한국판 제목이나 엘리자베스 크로퍼가 쓴 이 작품의 원작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밴디의 악행과 매력에 잘못 휘말린 클로퍼의 망가진 삶이 아니라 테드 밴디 개인에 대한 평가를 단순 단어 배열로 한 영어는 시적이지도 않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느낌이다.